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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스레터] 올해, 전주의 다큐들이 던진 질문
2020-08-31 17:00:00Hits 149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2020-08-31

👬 올해, 전주의 다큐들이 던진 질문
     - 2020년 주목할만 한 세 편의 다큐멘터리 <보드랍게><보라보라><사당동 더하기 33> 

여러분 안녕하세요? 전주국제영화제 뉴스레터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매년 한국사회의 가장 논쟁적인 주제를 스크린에서 선보여 온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는 올해  장기 상영회에서도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는데요. 

특히 위안부 할머니의 생을 입체적으로 탐문한 박문칠 감독님의 <보드랍게>와 고속도로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기를 담아낸 김도준-김미영-김승화 감독님의 <보라보라>, 그리고 사회학자이기도 한 조은 감독님이 33년간 한 가족의 역사를 좇으며 대물림되는 빈곤 문제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사당동 더하기 33>은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담론을 제기하고 있는 수작들입니다. 
 
CGV아트하우스와 함께 하는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서울 장기 상영회에서 관객들과 직접 만난 감독님들의 말을 통해, 올해 전주가 선택한 다큐멘터리들이 한국사회에 던지고자 한 질문들을 되돌아봅니다. 
💁 피해자의 얼굴은 납작하지 않다 
    <보드랍게> Directed by 박문칠 감독

👆 강소정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보드랍게> 박문칠 감독, 박혜정 출연자 


박문칠 감독의 보드랍게는 2010년 작고하신 위안부 피해자이자 활동가 김순악 선생님의 일대기를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차분히 증언하는 작품입니다 다양한 연출 기법과 자료를 활용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할머니의 육성 증언을 바탕으로 방송비평가 김선님이 집필한 저서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카이>를 제작에 다수 참고했다고 합니다.

영상의 시작과 함께 관객은 가장 먼저 누군가를 부르는 기이한 목소리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미투 운동 참여자들 그리고 김순악 선생님과 함께했던 시민모임 회원들의 목소리입니다. 김순옥, 김순악, 사다코, 데루코, 요시코, 마츠다케, 기생, 마마상, 식모, 개잡년, 엄마, 위안부, 할머니… 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인 듯도 하고, 어찌 보면 전혀 다른 누군가를 부르기도 하는 듯한 여러 이름을 부르는 이 목소리들은 이야기의 말미에서 한 번 더 반복되며 도입부와는 전혀 다른 울림을 획득합니다.


이러한 연출 방식에 대해 보드랍게를 연출한 박문칠 감독은 "모습은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 동일한 증언이 반복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면서 "사운드 자체는 두 번 녹음하지 않고 같은 파일을 썼다. 그럼에도 앞의 목소리와 뒤의 목소리가 전혀 다르게,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반응이 많았다. 연출자로서는 감사한 이야기다"라고 전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박문칠 감독은 우리 사회가 피해자를 지극히 단편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없이 고통스럽고 가난하고 우울하게만 생을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은,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김순악 할머니께서 ´이미 몸띠를 버렸는데´라고 자책하셨던 걸 떠올리게 한다"며 "또래 친구를 만나고, 피해 경험 이후를 살면서 행복해하시는 순간까지 가감 없이 담고자 했다"고 합니다. 

👍 비정규직 노동자에서 투사가 된 여성들
    <보라보라> Directed by 김도준·김미영·김승화 감독

👆문석 프로그래머  김도준 감독, 정길우 촬영총괄, 김승화 감독, 반효정·김미이·김경남 노동자


2019년 7월 1일,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 1500명이 자회사로의 소속 변경을 반대하다가 집단해고 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고공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경북 김천 도로공사 본사와 청와대 앞으로, 세종로 공원으로,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무실을 찾는 사이 계절이 몇 번 바뀌었습니다.

김도준 감독이 연출 총괄을 맡고, 톨게이트 노동자 김미영, 김승화씨가 공동 창작자로 참여한 <보라보라>는 이 시기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입니다. 이처럼 기약 없는 투쟁을 견디게 한 힘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김승화 감독은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어서 견뎠다. 다들 내 언니 같고 동생 같고 엄마 같았다"며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김승화 감독의 대답에서 엿볼 수 있듯, <보라보라> 속에 등장하는 ´싸우는 노동자´는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라보라>는 이들을 누군가의 엄마로, 언니로, 누이로 다루는 대신 투쟁하는 노동자, 동지들과 함께 성장하는 노동운동가로 다루는 데 집중하는데요. 작품 속에서 이들은 여성이고 장애인이고 탈북민이면서, 동시에 싸우고 울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노동자입니다. 이에 대해 김도준 감독은 "투쟁의 면면을 여과없이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매일 울기만 한 건 아니다. 그 안에서도 음악이 있고 축제가 있었다. 이분들이 함께 성장해가는 과정을 다루고 싶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의 인문학자 이진경은 그의 저서 <역사의 공간>에서, 자크 랑시에르의 말을 빌려 정치가 "역사의 공간 안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자격 없는 자들이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 썼는데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기를 담아낸 <보라보라> 그리고 피해자 김순악과 함께 인간 김순악을 드러낸 <보드랍게>는 올해 가장 ´정치적인´ 다큐멘터리로 이름을 올리기에 손색없는 작품일 것 같습니다.


👪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가난의 역사 
      <사당동 더하기 33> Directed by 조은

👆김소미 씨네21 기자-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 <사당동 더하기 33> 조은 감독


한 사회학자가 1986년 사당동 철거 당시 철거민 중 하나였던 정금선 할머니, 그리고 그 아들 이수일 씨와 세 손자녀를 만난 것은 무려 33년 전 일입니다. 북에서 월남한 정금선 할머니는 아들 이수일 씨와 사당동 쪽방촌을 거쳐 상계동 임대아파트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고자 했습니다. 사회학자 조은 교수는 "사당동 철거 지역을 관찰하는 사회학 연구를 위해 사당동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만난 이 가족을 보면서, 여기 이 아이들은 어떻게 자랄까 하는 사회학자로서의 관심을 따라 이들을 삶을 카메라에 담게 됐다"고 말합니다. 

33년 전 7살, 10살, 13살이던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조은 감독은 1986년 녹취로 시작한 이들 가족에 대한 기록을 사진으로, 카메라로 옮겨가며 22년간 기록한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사당동 더하기 22>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2020년, 이제는 4대의 기록이 된 <사당동 더하기 33>으로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에서 관객과 만나게 된 것이죠. 

두 편의 작품은 어떻게 닮아있고 또 어떻게 다를까요? 조은 감독은 "<사당동 더하기 22>에서는 철거, 재개발, 북에서 내려온 이주 가정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췄다. ´이주의 과정´이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사당동 더하기 33>은 이 가족과 나와의 관계를 더 많이 드러내고자 했다. 많은 다큐멘터리이들이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하지만, 나는 이 작품에서 가족, 계급, 젠더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을 통해 대상을 사유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또 "어찌 보면 사회학자로서 내가 배운 게 더 많았다. 사회학자는 연구 대상을 대상화하고 객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훈련받곤 하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경계를 넘어서 연구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알았다. 사회적 약자들, 빈곤층이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사회학자가 대신 말해준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사당동 더하기> 시리즈는 빈곤 여성의 역사를 다룬 작품이기도 합니다. 북에서 내려온 정금선 할머니의 아들은 연변에서 데려온 여성과 아이 셋을 낳고 가족을 떠났습니다. 그 아이 셋 중 첫째 아들은 필리핀에서 아내를 얻어 가정을 꾸리게 됩니다. 이 가족의 변화를 지켜보는 과정 속에서 조은 감독은 여성들의 삶을 좀 더 세밀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지난 영화의 주인공이 할머니였다면,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할머니의 손녀다. 할머니로부터 증손녀에 이르기까지의 가난한 여성들의 삶, 그들의 여성사가 자연스럽게 작품에 드러나게 됐다. 또 아무래도 내가 여성이기 떄문에 남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속내를 드러내지 않게 되더라"고 설명했습니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관객들과 만난 이들 가족의 이야기는 아쉽지만 여기에서 끝난다고 합니다. 조은 감독은 "이 가족과 나와의 관계는 끝나지 않겠지만 더 이상 영상 촬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하네요. 대신 언젠가 또 한 권의 책으로 세상과 만날거라고 합니다. "이들의 삶의 의지와 생존본능은 경계가 없었다. 그것이 생계이자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삶의 양식이라 생각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삶 그대로의 것이었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내레이션의 울림 속에서 그들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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