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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철’ 배종대 감독 - 타인의 마음을 읽는 미스터리
2020-06-03 10:26:00Hits 424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 <빛과 철> 배종대 감독


참 얄궂다. <빛과 철>은 교통사고 가해자의 아내 희주(김시은)와 피해자의 아내 영남(염혜란), 두 여성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는 교통사고의 진실을 추적하는데 큰 관심이 없다. 원하든 원치 않든 두 사람이 부딪히면서 각자의 사연, 감정, 그간 그들에게 있었던 일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영화는 영남과 희주 그리고 둘을 잇는 영남의 딸 은영(박지후) 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게 하면서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계산된 연기가 빛을 발하는 것도 그래서다. 덕분에 염혜란은 배우상을 수상했다. <빛과 철>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고함>(2007) <계절>(2009> <모험>(2011) 등 단편을 만든 배종대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배 감독은 “관객이 영화 속 등장인물과 함께 캐릭터의 마음을 하나씩 알아가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영화는 장기상영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 <빛과 철> 배종대 감독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가해자의 아내인 영남과 피해자의 아내인 희주, 두 인물에서 출발했다. 같은 사고를 겪은 두 사람이 양극단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다루면 어떨까 싶었다. 정반대의 지점에 선 두 사람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어떤 인물들 등장시킬까, 둘을 어떻게 만나게 할까 고민하다보니, 우연히 만날 수 있는 상황이 교통사고였다. 교통사고는 일상에서 종종 일어나고,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겪는 일이지 않나. 의도적인 충돌이 아닌 우연하게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고. 그렇게 충돌해 엇갈린 인생을 살아가는 두 사람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어떤 도시에서 살까, 어디서 어떤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릴까 등 설정들이 차근차근 구축됐다.

-대척점에 위치한 두 사람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마음을 읽기 힘들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쩌면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가깝고도 먼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할 때 어느 순간 멀어지고, 그러면서 상대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가 모르는 순간도 많았고. 인간과 인간이 왜 단절되고 멀어질 수 밖에 없는지 고민한 것이 이 영화를 출발하게 된 계기인 것 같다. 물론 타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외면하거나 모른 척하거나. 그렇다고 그 사람이 악하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영화는 누가 맞다, 틀렸다를 가리는 영화가 아니다.

-<빛과 철>은 그렇다고 교통사고의 진실을 쫓는데 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영남과 희주, 두 사람이 만나면서 각자가 가진 사연과 감정 그리고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조금씩 드러내면서 긴장감을 구축하는데 더욱 공을 들이는데.
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미스터리 구조로 다루는 게 중요했다. 미스터리 형식으로 시나리오를 썼을 때 주변에서 반대 의견도 많았다. 지원 사업 심사 과정에서 인물보다 장르에 더 집중하는 게 아닌가라는 지적도 받았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미스터리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교통사고가 일어난 날 밤, 영남과 희주의 남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사건과 관련된 진실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관객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함께 등장인물이 가진 마음에 도달해가는 과정을 알아가는 게 중요했다. 사건의 미스터리에서 인물이 가진 감정의 미스터리로 전환되는 계기를 보여주려고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염혜란과 김시은의 어떤 점에서 영남과 희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나.
두 배우가 전작에서 보여준 얼굴과 다른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작에서 스쳐지나가듯이 드러나는 표정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염혜란 선배는 그간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억척스럽거나 친숙한 면모들을 많이 보여주시지 않았나. 그런 모습 사이에 드러나는 서늘함이 되게 좋았다 (김)시은씨도 전작에서 발랄하거나 밝은 역할들을 많이 보여주었는데, 그럼에도 무표정에서 간혹 드러나는 염세적인 느낌이 있었다. 관객도, 감독인 나도 쉽게 예상하지 못하는 결을 보여주려고 했고, 그래야 이야기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박지후씨가 연기한 영남의 딸 은영은 영남과 희주를 잇는 연결고리로 흥미로운 인물이더라.
은영은 이 영화에서 가장 차별화된 인물이다. 희주와 영남이라는 점이 있고,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는데 어떻게 상황을 만들어도 둘이 부딪히는 상황을 만들어내기가 막막했다. 그 위에 은영이라는 점을 만들면 삼각형이 만들어진다. 희주가 은영을 통해 영남에게, 영남이 은영을 통해 희주에게 갈 수 있게 된 거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한 얘기를 할 수 없지만 관객이 은영이 하는 행동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다. 서사에서 은영은 다른 인물들의 퇴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이기도 하다.

-박지후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벌새>를 보고 모두가 저 배우를 찾고, 열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먼저 그와 함께 작업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출연을 부탁드렸다. 다만, <벌새>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가 일상적인 톤이 많다면, 이 영화에선 미스터리한 모습을 보여줘야 해서 신경을 많이 썼다.

-서사가 전개되면서 감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줘야 하고, 매신 감정적으로 힘든 상황이 많아 배우들이 작업하기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이 영화를 만들 때 세운 목표는 촬영 전에 배우들과 대본 리딩을 하지 않는다였다. 배우들에게 사전에 연습하거나 준비하는 연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촬영 전 (김)시은씨와 염혜란 선배님을 만나 캐릭터에 대한 얘기보다 그들이 어떤 배우인지 알아가는데 집중했다. 시나리오에는 생략된 영남과 희주의 전사가 있는데, 배우들은 각자 맡은 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지 많이 물었다. 그러면서 함께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김시은씨와 염혜란 선배님을 촬영 전에 한번도 만나지 않도록 했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공장 사무실에서 처음 만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쳐다보는 장면을 촬영 초반부에 찍었는데 그 장면을 찍으면서 ‘이 영화는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우리가 머릿속에 생각했던 것들이 만들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할만큼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다.

-서사가 전개되면서 영남과 희주가 각각 가진 고민과 상처 그리고 감정들이 순차적으로 드러나는 까닭에 관객 또한 등장인물과 함께 상대의 속내와 감정들을 알아가는 느낌이다.
미스터리 장르가 그렇듯이 관객도 영화 속 등장인물과 같은 경험을 하는 것처럼 찍으려고 했다. 희주는 영남을, 영남은 희주를 잘 모르지 않나. 그들이 만나면서 서로를 알게 되잖아. 그걸 관객들도 함께 경험하길 바랐다. 타인의 마음을 단번에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알아가는 것처럼.



▲ <빛과 철> 배종대 감독


-영화는 각각의 사연을 통해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도 다룬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한 얘기를 할 수 없지만, 신문을 보면 매일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그들의 죽음 이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빛과 철>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겠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장기 상영을 선택한 이유가 뭔가.
온라인 상영을 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옛날 사람이라고 놀리는데, (웃음)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지 그런 마음이 있었다. 함께 작업한 배우와 스탭들과 함께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보고 싶었다. 물론 온라인에서 상영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영화의 첫 인상을 극장에서 남기고 싶었다. 이렇게 얘기하니 되게 옛날 사람 같다. (웃음)

-첫 장편영화를 내놓은 소감이 어떤가.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내 의도를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척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너무 오래 이 영화에 매달려서 이 영화 외에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작업해서 다음에 무슨 영화를 만들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글 김성훈·사진 백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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