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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이태겸 감독, “송전철탑이 곧 정은의 삶이라고 보았다”
2020-06-02 16:27:00Hits 212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본사 사무직인 정은(유다인)은 어느 날 지방의 하청업체로 파견된다. 송전철탑을 수리하는 하청업체 동료들은 정은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노골적으로 퇴사를 압박한다. 단편 영화 <복수의 길>(2005)과 <소년 감독>(2008) 등 전작에서 이주 노동을 다루었던 이태겸 감독은 <파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이하 <파견>)에서도 하청 노동의 비인간적인 구조를 재현한다. “‘파견’이란 제목을 통해 노동 환경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아무리 절망적 상황에 있어도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송전철탑에 압도되었던 정은이 꿋꿋하게 삶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은 이태겸 감독이 이름 붙인 영화의 제목과 닮았다. <파견>에서 낮에는 송전철탑 수리업체 직원, 밤에는 편의점 알바생, 심야에는 대리운전 기사인 막내를 연기한 배우 오정세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수상했다.


▲ 이태겸 감독


-파견 노동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사무직이었던 여성 노동자가 전봇대를 수리하는 지방의 현장직으로 파견 발령을 받았는데, 그곳에서 감시와 조롱의 대상이 됐다는 언론 보도를 봤다. 기사를 읽고 그분이 처한 현실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했고 많이 감정이입이 됐다. 그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극영화를 반드시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파견>은 노노갈등과 파견업체, 산업 재해 등 노동과 관련한 여러 복잡한 문제를 다 다루고 있다.
본래 하청 구조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복잡한 방식으로 돼있다. 하청 구조 자체가 여러 모순 속에 있고 복잡한 관계 속에 있는 노동의 형태다. 노노갈등도 사실 익히 많이 들어왔던 문제이고 하청과 원청의 구조도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배우 유다인이 <혜화, 동>에서와 같이 온전히 관객의 감정을 끌고 나가는 연기를 선보인다.
배우 유다인이 시나리오를 정말 마음에 들어 해서 감독으로서 고마웠다. 이 영화에서 정은의 내면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유다인이 말론 브란도와 같은 내면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웃음) 내면 연기는 감정을 간직한 채로 미묘한 부분을 표현해내야 하는데 <혜화, 동>에서 내면 연기를 참 잘한다고 생각한 유다인이 이번 영화에서도 잘 해낸 것 같다. 영화 후반부에 정은이 감정을 폭발시키기도 한다. 이 또한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재현하다가 어느 시점에 드러낸 감정이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표현됐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하청 업체에 적응하려는 정은을 돕는 막내 역의 배우 오정세도 따스하고 진솔한 연기를 한다.
유다인이 말론 브란도라면, 오정세는 르네 데카르트다.(웃음) 데카르트가 참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여러 방법적 회의를 하듯이, 오정세는 계속해서 캐릭터에 대해서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질문하던 것처럼 현장에서까지 질문을 하고 감독과 대화를 나눴다.

-정은이 송전철탑을 보고 공포를 느끼자 막내가 훈련을 시키면서 정은의 차키를 송전철탑에 올려두고는 가져와보라고 한다. 정은이 한발 한발 움직여서 송전철탑을 오르는데 삶에 대한 의지와 힘이 느껴진다.
정서적으로 송전철탑이 곧 정은의 삶이라고 보았다. 너무 위험하고 버거워서 정은이 공포증에 걸릴 수밖에 없고, 극복하기 힘든 삶과 같은 셈이다. 실제로 보면 송전철탑은 굉장히 웅장하고 기하학이어서 미학적인 데가 있다. 그리고 만지면 정말 차갑다. 차가운 금속성이 느껴진다. 붙잡으면 육중함이 느껴진다. 330볼트의 전기를 실어 나르기 때문에 위험한 구조물이기도 한다. 어쨌든 정은은 삶과 같은 송전철탑을 한발한발 오른다.



▲ 이태겸 감독


-송전철탑을 오르는 장면을 찍을 때 배우들이 어려워하지 않았나.
송전철탑 교육을 진행하는 장소에서 촬영을 많이 했는데 전문 강사에게 철탑에 오르는 방법부터 배워야 했다. 배우 유다인과 오정세는 오르는 법을 배울 때부터 철탑 끝까지 올라갔다. 두 사람의 열정과 적극성에 너무 놀라서 제작진도 말을 못 이었다. 직접 올라가봐서 아는데 심리적으로 조마조마할 뿐만 아니라 안전벨트를 비롯해 배우가 장착한 장비들이 물리적으로 매우 무겁다. 거의 10kg에 달한다. 훈련소 송전철탑은 25~30m에 이르는데 오르면 내가 정말 보잘 것 없고 발아래 사람들은 손가락 끄트머리만하게 보인다. 그런 높은 곳 끝까지 배우들이 단숨에 올라갔다니 놀라웠다.

-하청업체 직원 중 시종일관 랩을 하면서 유쾌하게 송전철탑을 수리하는 승우(박지홍) 캐릭터도 인상적이다. 삶이 무거운 정은과 막내 하고는 다르다.
영화에 철탑을 사랑하는 인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승우는 정은과 대비되는 인물로, 철탑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활력 있게 받아들이는 캐릭터다. 승우는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시골에서 일하고 있지만 거대한 철탑을 너무 사랑하는 인물이다.

-영화 음악이 마치 전기 신호와 같다. 대형 송전철탑을 비추는 카메라에 더 없이 잘 어울렸는데 어떻게 탄생한 음악인지 궁금하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탱글(The Tangles)이라는 음악팀이 있다. 국악과 재즈를 융합한 그룹인데 멤버 중 재즈 전공자인 김범찬이 작곡을 주로 많이 했다. 탱글은 영화음악 작업은 처음했지만 전형적인 음악을 싫어해서 실제 송전철탑에서 나는 소음을 음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영화를 촬영하는 동료들이 담은 송전철탑 소음에다가 전자 피아노 소리를 더했다. 연출자로서 정은이 철탑을 오르는 장면에서 음악이 탄생할 때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메인 테마곡은 모두 완성됐지만 해당 장면에서 쓸 음악이 나오지 않아서 탱글 김범찬씨가 괴로워했다. 편집 중인 영화를 들고 광주로 내려가서 그를 찾아갔는데 영화를 보고 “한번 쳐볼게요” 하더니 전자 피아노로 즉흥 연주를 했다. 장면과 음악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걸 들으면서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파견>의 영화음악은 수평선을 달려서 좋았다. 보통 영화음악은 주인공을 돕기 마련인데, <파견>의 영화음악은 정은과 긴장관계 속에 놓여있다. 기차의 평행선처럼 인물과 거리를 유지하는데 좋았다.

-마음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나.
정은이 “해고나 사망이 뭐가 달라요”라고 하는 대사. 다른 사람들은 알바라도 하고 살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직업 자체가 이미 나의 삶이 되기 때문에 해고로 인한 아득함은 깊이를 측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벼랑 끝에 밀리지 않나. 또 막내 대사 “사는 게 다 알바죠”가 기억에 남는다. 대부분의 일자리가 비정규직이거나 단기적인 일자리이다. 정규직 안정적 직장이 해체되고 있다. 막내가 알바라고 표현하지만 노동시장이 짧은 노동을 연속적으로 하도록 재편됐다고 생각한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뭔가를 준비하고 있지만 현재는 <파견>의 배급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영화를 본 누군가는 “이 영화가 시사적인 측면에서 주목을 받으면 사람들이 많이 볼 수도 있지 않으냐”고 하더라.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노동과 관련한 시사 이슈가 없었던 적이 없다. 구의역 김군 참사나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사망과 같은 사건은 늘 있었다. 작게 만든 영화지만 잘 배급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글 배동미·사진 백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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