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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하지 마세요’ 정연경 감독, "이 영화를 보고 살아갈 용기와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
2020-06-01 14:06:00Hits 206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자녀 살해후 자살’(부모가 아이를 혼자 두거나 혹은 함께 자살하는 사건으로 ‘집단 살해’는 적절하지 않는 표현이다-편집자)이라는 안타깝고 불행한 소재를 그린 이야기다. 아빠가 사업을 하다가 큰 빚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면서 선유와 그의 엄마는 혼자 남는다. 둘은 새로운 곳으로 이사한다. 선유는 전학을 가서 학교에 잘 적응하려고 하고, 심리가 불안정한 엄마도 직접 챙긴다. 선유 엄마는 고깃집, 공장을 돌며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과거가 둘의 발목을 붙잡으면서 새출발은 그들의 마음처럼 쉽지 않다. 일본영화학교 출신으로 단편 <바다를 건너온 엄마>(2011)를 만든 정연경 감독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첫 장편 연출작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소감을 말했다.


▲ 정연경 감독


-이 영화는 ‘자녀 살해후 자살’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과거에도 부모가 아이를 혼자 두거나, 혹은 함께 자살하는 사건들이 종종 있지 않았나. 2016년 가을 대구에서 한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는데 며칠이 지난 뒤 엄마의 시신이 낙동가 하구에서 먼저 발견된 적 있다. 아이가 엄마를 따라 버스를 타고 낙동강 근처까지 간 CCTV 영상이 있어 경찰은 수배령을 내리고 아이를 찾아나섰다. 이 사건을 다룬 기사를 보면서 아이가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 며칠이 지난 뒤 아이의 시신 또한 엄마의 그것이 발견된 곳 근처에서 발견됐다. 아이가 남긴 유서가 나중에 발견됐는데 ‘내가 죽거든 십자수, 색종이 접기책을 종이접기를 좋아하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죽은 아이는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유서를 썼을텐데…그때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 질문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출발점이라 봐도 되겠다.
엄청 울만큼 매우 충격적이었다. 죽음을 택한 엄마와 아이는 외부와 소통 없이 고립된 환경에서 살았다고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사회의 어른으로서 어린이가 극단적 선택을 내리는 것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런 마음이 크게 작용한 건가.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아이에게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그리 크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부모의 의지나 가치관이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하니까. 시나리오를 쓸 때 주인공 선유와 그를 좋아하는 남자친구 정국을 중심으로 플롯을 구성했다. 주변에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다면, 항상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언제든지 의지가 될 수 있는 인물을 그의 옆에 두려고 했다.


▲ 정연경 감독


-무거운 소재와 달리 영화는 선유와 그의 엄마가 새출발하는 모습을 밝게 묘사하더라.
시나리오를 쓸 때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사람이 힘든 상황에 처하면 자신에게 닥친 일로 괴로워해서 상황을 바라보는 시야가 많이 좁아진다고 한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고, 삶의 기쁨을 줄 수 있는 것들이 많더라도 말이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더라. 그들이 시나리오를 읽고 많이 공감해주었고, 꼭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다. 삶이 힘들어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그걸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

-김형구 촬영감독과 영화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을 것 같다.
그와 나눈 대화는, 어떻게 하면 카메라가 아이들의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였다. 카메라가 아이들을 관심있게, 또 따뜻하게 바라보는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하려고 했다. 김형구 촬영감독님을 포함해 배우, 스탭들 덕분에 시나리오를 쓰면서 생각했던 이미지보다 120, 130% 더 표현된 것 같아 감사하다.

-남 눈치를 많이 보고, 자신보다 엄마를 먼저 챙기는 선유의 행동이 또래보다 성숙해 과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면서도 안타까웠다.
말씀대로 선유는 아버지가 자살한 뒤 심리가 불안정해진 엄마의 기분을 맞춰야 하고, 자신의 존재 또한 불안정한 상태임에도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한다.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강박관념도 가지고 있고. 선유는 평소에는 어른 같지만 자신을 좋아하는 정국과 함께 있을 때 아이가 되는, 두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엄마와 선유의 잘못이 아닌데도 모녀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벅차다. 엄마는 고깃집, 공장을 전전하며 일을 하고, 선유는 그런 엄마를 챙기면서 학교에서는 의연하게 행동해야 한다.
자살을 예방하고, 심리 상담하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르면 주변 사람들이 자살하면 남겨진 가족들의 아픔이 무척 크다고 하더라. 남자들이 경제적인 책임을 지는 보통의 상황에서 혼자 남겨진 엄마와 딸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클 거라고 보았다. 그점에서 선유 엄마 캐릭터를 구축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대구 사건을 다룬 기사를 처음 봤을 때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극단적 선택을 했던 엄마에 대한 분노가 컸다. 너무 속상했지만 많은 자문들을 받으면서 선유 엄마를 지나치게 미워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감독으로서 그녀를 이해해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에서 내가 선유엄마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하니 너무 괴롭더라.

-영화를 만드는 내내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겠다.
시나리오를 쓰는 내내 많이 울었다. 선유 엄마 같은 상황에 처하면 누구라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운 동시에 선유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선유 엄마는 그런 선택을 하기 전에 이미 내면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심리적으로, 감정적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또, 이 사람에게 아이를 두고 그런 선택을 했는지 비난하기 전에 우리는, 사회는 대체 무엇을 했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는 경험이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을 때 어떤 영향을 끼쳤나.
평소 아들이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놀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아이 친구들과 놀아주는데, 그런 경험이 아역 배우들과 소통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어려운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아역 배우들에게 큰 빚을 졌고, 이 친구들이 배우로서 활약할 것을 생각하니 기대가 크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특히 바보 같은 어른들의 모습에는 내 모습이 조금씩 반영됐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일까,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같은 고민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으니, 누군가가 이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고, 살아갈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 정연경 감독


-전작인 단편영화 <바다를 건너온 엄마>(2011)는 엄마가 일본에 일하러 가는 바람에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와 아이를 중국에 두고 한국에 일하러 온 재중동포 여성의 관계를 그린 이야기였다.
내 이야기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어머니께서 2년 동안 일본에 가서 일을 하며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고, 나 또한 신문배달, 과외 등 뭐라고 해야했다. 그때 겪은 가난으로 인해 생긴 상처가 오래 갔다. 그 다음해 일본에 유학을 갔는데 그곳에서도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낮에는 학교에 가는 생활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가게에서 중국에서 오신 아주머니가 일하셨는데 그 분이 내게 되게 잘해주셨다. <바다를 건너온 엄마>는 내가 경험했던 일들을 재구성해 만든 영화다.

-<바다를 건너온 엄마> <나를 구하지 마세요> 모두 엄마와 자녀를 그린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간 엄마로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생각하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엄마와 아이들을 다룬 이야기를 쓸까, 왜 이 주제에 관심이 많을까 스스로 궁금하더라. 되돌아보니 과거 겪은 경험들이 알게 모르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다음 작품? 아직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 없지만, <나를 구하지 마세요>가 그랬듯이 내가 궁금해하는 주제를 또 다루게 될 것 같다.

글 김성훈·사진 백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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